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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信心), 수행의 첫걸음 - 사집반 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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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6.07.31 조회21회 댓글0건

본문

신심(信心), 수행의 첫걸음

 

사집반 고우

 

1. 은퇴 출가, 그리고 마주한 화두

 

삼보에 귀의합니다.

 

세상의 인연을 정리하고 산문(山門)에 들어선 지 어느덧 삼 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남들은 삶을 정리하고 안식을 취할 육십 대의 나이에, 저는 동학사 강원 사집반이라는 자리에 앉아 비로소 한없이 깊고 넓은 불법(佛法)의 바다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강원에서 마주하는 경전의 말씀들은 하루하루가 새롭고, 도반들과 함께하는 새벽 예불은 매번 옷깃을 여미게 만듭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도량에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를 들으며, 저는 지나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수행자의 길을 가만히 가다듬곤 합니다.

 

경전을 읽고 공부를 거듭할수록 제 마음속에 깊이 고이는 하나의 화두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심(信心)'이라는 두 글자입니다. 제가 마주한 신심의 본질과, 삶의 황혼녘에 비로소 눈을 뜬 참된 믿음의 의미를 이 자리를 빌려 대중 스님들과 담담히 나누고자 합니다.

 

2. 서장에서 배우는 믿음

 

『화엄경』에 나오는 "信爲道元功德母"의 가르침을 대혜선사께서 『서장』에서 거듭 인용하고 계십니다.

 

    信爲道元功德母요, 增長一切諸功德이라. 信能必到如來地라.

    믿음은 도의 으뜸이자 공덕의 어머니요,

    모든 모든 공덕을 자라나게 하느니라.

    믿음은 능히 반드시 여래의 경지에 도달하게 하느니라.

 

강원에서 마주하는 일상과 도반들과의 묵묵한 정진은, 결국 제 안의 신심이라는 대지에 공덕의 싹을 틔우는 과정입니다. 또한 그 믿음이 우리를 반드시 여래지에 이르게 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이 믿음이 있기에 은퇴 출가자로 걷는 이 길에서 깊은 안도감을 느끼며, 어떤 번뇌와 역경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게 해 줍니다.

 

서장을 공부하며 저는 '결정신(決定信)'이라는 가르침을 새롭게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본래 불성을 갖추고 있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끝까지 믿고 실천하는 확고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삶에 어떤 거센 역경과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그저 여여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담담하고도 단단한 각오이기도 합니다.

 

육십 평생을 세상의 가치관에 의지해 흔들리며 살아온 제게, 내 안에 이미 온전한 불성이 깃들어 있다는 이 결정신은 제 삶을 새롭게 비추는 등불과 같았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삶의 이정표를 완전히 바꾸는 일대 사건이 됩니다. 이번 생에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제가 마침내 발심하여 이 자리에 서 있듯이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출가 또한 신심이 제 삶에서 맺은 하나의 열매였습니다.

 

3. 불교에서의 믿음 - 능동적 확인과 실천

 

세상에서 말하는 믿음은 대개 절대적인 존재에게 모든 것을 맡기거나, 의심 없이 따르는 무조건적인 수용을 의미하곤 합니다. 그러나 제가 불법을 만나고 강원에서 배운 불교의 믿음은 조금 결이 다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이나 맹목적인 추종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직접 실천하고 경험하여, 당신의 가르침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확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불교에서 말하는 신심은 깨달음을 향해 스스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지극히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마음가짐입니다.

 

세상의 풍파를 겪으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내 눈으로 확인되지 않고 내 삶으로 증명되지 않은 지식은 결국 모래 위에 세운 성과 같다는 점입니다. 신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그 간절함 속에,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아보겠다는 단단한 의지가 깃들 때 비로소 신심은 살아 숨 쉬기 시작합니다. 의심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실천을 통해 의심을 지혜로 바꾸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불교가 말하는 위대한 믿음의 출발점일 것입니다.

 

4. 삶의 향상을 향한 열망

 

수행의 첫 관문인 신심은 누군가의 강요나 의무감으로 결코 생겨나지 않습니다. 늦은 나이에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저를 보며 세상 사람들은 의아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 내면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순수한 발원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어린 시절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시던 외할머니의 묵묵한 뒷모습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말 한마디 없이 삶의 고단함을 묵묵히 이겨내시던 할머니의 그 고요한 기도는, 제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남아 평생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 마음에 가득 찬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이라는 삼독(三毒)에서 이제는 온전히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함이 마침내 저를 이 자리로 이끌어주었습니다.

 

나이 들어 출가한 제게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절박함은, 평생을 통틀어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제게 남은 삶은 스스로를 향상시키고, 나아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이롭게 하는 데 쓰여야 마땅합니다. 이러한 순수한 발원이 있기에, 강원에서의 하루하루가 고단하고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힐 때도 새로운 하루를 감사히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5. 생활 속에서의 신심

 

저는 매일 아침 예불을 올리기 전에 '오늘도 이 자리에서 부처님께 예경 올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라며 삼배를 올립니다. 이러한 감사의 마음도 바로 신심에서 비롯됩니다.

 

세련된 교학을 머리로 이해하거나, 화려한 말재주로 귀한 가르침을 늘어놓는 것보다 내 삶의 현장인 강원의 엄격한 일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때에만 신심은 비로소 살아 숨 쉴 수 있습니다.

 

매사를 부처님 모시듯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하는 것, 일과 속에서 불쑥 올라오는 화를 한 번 더 가라앉히는 것, 내 몫을 챙기려는 은근한 욕심을 조용히 내려놓는 것, 그리고 곁에 있는 도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 이 작은 실천들이야말로 경전에서 강조한 '살아 있는 신심'이자, 제가 앞서 말씀드린 '여여한 각오'의 실체입니다.

 

남은 여생, 수행자로서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대한 신심을 더욱 깊고 단단하게 다져가고자 합니다. 강원에서 배운 가르침을 삶 속에서 묵묵히 실천하며, 부끄럽지 않은 수행자로, 이 신심의 지팡이를 놓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이것이 오늘 스님들 앞에서 올리는 저의 작은 발원입니다.

 

감사합니다.

 

 

 


의정부 성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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