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 - 화엄반 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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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6.07.31 조회21회 댓글0건본문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
화엄반 정연
안녕하십니까. 화엄반 정연입니다.
차례법문은 여전히 긴장되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화엄반이 되어
이 자리에 서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우리 대중 스님들의 반가운 얼굴을 보면서, 저는 오늘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는 주제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화가가 붓끝을 한 번 움직이는 미세한 순간에도 수많은 그림이 바뀝니다. 그렇듯 우리의 마음도 각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마음이 찰나마다 생겨나고 사라집니다. 마음을 화가에 비유한 법문이 『화엄경』 「승야마천궁품」에 있습니다.
心如工畫師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
能畫諸世間
능히 모든 세상을 다 그리네!
五蘊悉從生
오온이 모두 마음을 따라 일어나는 것이니
無法而不造
만들어지지 않은 법이란 없다.
이 유명한 게송은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 낸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사상을 깊이 있게 밝혀주는 비유입니다. 부처님의 이 가르침은 우리의 삶과 현실을 꿰뚫는 논리적 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붓을 잡은 화가는 하얀 도화지 위에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릴 수 있습니다. 어두운 밤하늘을 만들 수도 있고, 찬란한 태양을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때 그림 속 세상의 본질은 실제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찍어 누른 물감과 마음의 합작품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객관적으로 원래부터 존재하는 고정된 실체가 따로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선입견, 경험, 업식(業識),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이라는 '마음의 붓'이 외부의 자극과 만나는 순간, 내 마음속에 '이것은 기쁜 일, 이것은 슬픈 일, 이것은 나쁜 사람, 이것은 좋은 세상'이라는 그림을 실시간으로 칠해나가는 것입니다.
이렇듯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이 실제인 줄 깜빡 속았던 저의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번 철 중간쯤부터 가슴이 짓눌리는 느낌 때문에 새벽마다 일찍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째 되는 날에는 오른쪽 가슴이 더욱 강도 높게 짓눌리고 통증도 매우 심하게 일어났습니다. 숨이 막힌 듯, 호흡하기도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너무나 겁이 났습니다.
혈관이 막힌 것인가? 심장병인가? 어떻게 해야 하지?
저는 곧장 처방받아 놓은 고지혈증약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호흡할 때마다 통증은 더욱더 심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오직 '심장병'이라는 단어만 클로즈업 되었습니다. "병원에 가야 하나? 119를 불러야 하나?"
다급한 마음에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았습니다. 돌아온 답은 "곧바로 119에 연락하세요. 주변에 함께 있는 사람이 있나요?"였습니다.
저는 이미 심장병 환자가 되어있었고, 불안과 공포 속에 갇혀버렸습니다.
병원에 가야겠다는 일념에 새벽 3시 17분에 학감 스님께 연락해 저의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정맥 여부를 물으시고, 몸을 공처럼 말아 머리를 숙여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보니 숨쉬기는 조금 편해졌지만, 통증은 차도가 없었습니다. 학감 스님께서 주신 부정맥약과 아스피린, 진통제를 차례로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학장 스님께서는 독한 약을 그렇게 마구 먹으면 어떻게 하냐고 하시며, 심장병은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입승이 얼마나 중한 소임이냐, 입승 사느라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심장이 아플 수도 있지 않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심장병이라고 믿고 있는 저에게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발우 공양이 끝난 후 저는 주지 스님께 심장이 아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시고 주지 스님께서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학장 스님께서는 입승 소임으로 인한 신경성 같아 보인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산으로 가든지 병원으로 가든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심장병이라는 자가 진단을 굳게 믿고 동학사를 나가 버스를 타고 현충원역에서 내렸습니다. 그 순간 그렇게도 아팠던 가슴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병원에서 협심증과 심근경색 검사를 받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아파서 오셨는데 이상이 없다고 말해야 할 때마다 미안합니다. 심장은 매우 잘 뛰고 있습니다. 심장에서 펌프한 피가 약간 역류하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2년 후에 검사하러 오세요"라고 하시는 거였습니다.
병원 검사를 통해, 저의 마음이 그린 '심장병'이라는 고통을 제거하며 아주 홀가분했고 기뻤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든 허구 속에서 감쪽같이 속아 새벽부터 공포와 불안에 허덕이고 시달린 일을 생각하니 어이가 없고 부끄러웠습니다.
아, 속았구나! 온전하지 않은 감정에 몸이 반응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힘든 마음을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저 몸이 잘못되었을까봐 집착하고 노심초사했습니다.
'나'라는 존재와 내가 경험하는 세계는 다섯 가지 요소 色·受·想·行·識 오온의 집합체입니다. 몸의 물리적 자극, 자극에 대한 느낌, 그것을 분별하는 상상과 개념, 의지적 의도와 행동, 이 모든 과정을 총괄하고 인지하는 의식! 이 오온의 연쇄 반응은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똑같은 상황을 겪더라도 어떤 사람은 기쁨(受)을 느끼며 감사한 마음(想·行)을 지어내고, 짜증(受)을 내며 원망하는 마음(想·行)을 만들어 냅니다. 동일한 외부의 조건을 받아들여 '기쁨의 세계' 혹은 '괴로움의 세계'라는 서로 다른 우주를 완성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각자의 '마음'입니다. 마음이 연기의 촉매가 되어 오온을 끌어들이고, 매 순간 우리의 세계를 새로 연출해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지옥과 극락, 분노와 평화, 결핍과 풍요는 바깥에서 누군가가 강제로 주입한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이 지어낸 비극의 시나리오에 스스로 빠져들어 눈물을 흘리고, 스스로 만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나의 괴로움의 원인이 외부에 고정된 채 존재한다면, 나에게는 그 괴로움을 바꿀 능력도 없습니다. 세상 전체를 내 입맛대로 개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괴로움이 내 마음이라는 '화가가 그려낸 그림'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본다면, 주도권은 완전히 나에게 있습니다. 화가는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을 언제든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있습니다.
『화엄경』의 심여공화사(心如工畫師) 게송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너는 지금 네 마음의 캔버스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느냐?" 과거의 상처라는 붓으로 어두운 밤을 그리고 있느냐, 아니면 지혜와 자비라는 붓으로 희망의 아침을 그리고 있느냐?
마음이 화가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자신이 그려놓은 그림(환경, 감정, 타인의 평가)에 지배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화가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내 삶의 당당한 '창조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 내 마음이라는 캔버스 위에 일어나는 분노와 불안을 가만히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사유하십시오. '아, 이것은 실체가 아니라 내 마음이라는 훌륭한 화가가 잠시 그려낸 한 조각의 풍경화일 뿐이구나.'
이 연기적 깨달음 속에서 붓을 잡은 손에 힘을 빼고 지혜와 평화의 색채로 내 삶을 다시 그려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화엄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참된 가르침이 아니겠습니까?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